김성수
[프리즘] 오펜하이머가 선생을 독살하려 했다?
최근 영화 오펜하이머가 화제다. 이 영화에서는 어느 과학 기술자의 연구에 대한 욕심, 인간적 고뇌, 정치 권력과의 갈등 등을 그리고 있다. 직접적으로 핵개발을 둘러싼 북한이나 주변국과의 관계나, 과학기술력을 중시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천재들 사이에서 오펜하이머가 성장하고 원자폭탄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그 이후 자신의 의도와 상반되어 전개된 결과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원작은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윌의 2005년작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과 시대'로 2006년에 퓰리처상을 받았으니, 진작에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영화의 첫 장면과 원작의 제목에서도 암시한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지만, 정작 인간은 불을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본인은 영원한 고통에 시달린다. 로마의 시이저는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 오진 않는다 라고는 했지만, 단지 인류의 안녕을 위한 과학자의 순진한 욕심은 정치 권력과의 갈등이 필연적이고, 또 꺾일 수 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때 선생을 독살하려 했던 천재과학자인 오펜하이머는 지적 욕구 외에 다른 것은 없었을까?
우리는 통상 인류와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개발한 경우, 그 당사자가 받게 될 사회적 명예, 경제적 보상, 국가적 환대 등을 떠올리게 된다. 비단 자연과학, 공학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을 포함하는 모든 학문의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가 성과로 인정되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하진 않다. 다만 사회적으로는 연구를 장려하는 분위기와 그 연구 성과에 주어지는 적절한(?) 대우가 혼동된다면 본말전도(本末顚倒) 일 것이고, 연구자 입장에서는 지난(至難)한 연구 과정에 집중하기보다는 예상되는 성과 부풀리기로 과도한 보상만을 바라는 것, 역시 주객전도(主客顚倒)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대학이 발표한 상온 초전도체 연구 성과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연구 결과의 진위나 재현성에 대해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검증을 진행하고 있고, 일부 성과의 부풀리기라는 의견들이 다수인 것으로 보인다. 연구 그룹 중에는 돌아가신 분을 포함, 30년 넘게 동일 주제로 연구해온 연구자들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하고 싶지만, 꾸준하게 해온 연구가 미완성 성과에 대한 과한 욕심으로 흐트러진 것 같아 안타깝다. 이와 같이 중요했던 과학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예상 성과 부풀리기와 성과에 대한 보상, 환대 만을 쫓다가 좋지 않는 파국을 맞는 사례가 비단 초전도체뿐이겠는가! 유사하게 20여 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동물 복제 연구가 있었다. 연구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줄기세포 같은 과도 선전 때문이었는지 방만한 연구관리 때문이었는지, 중단되어 현재 그 당사자는 중동에서 낙타복제연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면 필자 시선에는 영화 속의 오펜하이머는 '젯밥에만 눈이 가있는 중'은 아니었고, 아인슈타인이 충고처럼, 차후 전개 상황은 짐작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속세를 떠난 스님도 먹어야 사는데 젯밥에 관심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다만 제사가 안중에 없으면, 관심은 젯밥 밖에 없다. 주객전도나 젯밥 사례를 드는 김에…. 요즘 부쩍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학교생활이 서툰 어린 친구들의 귀여움과 이를 지도하는 헌신적인 선생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한 학교이지만, 현실에서 학교는 보습이나 취업준비 학원과 대놓고 혼동된다. 그러니 학부모, 학생, 교장의 민원처리 과정도 학원과 같다. 갑인 학부모는 학교에 학원과 똑같은 민원을 낼 것이다. 을인 교원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세부사항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학교의 본 모습을 생각해보면 아득하다. 대학에 있는 필자도 그렇다. '인격도야의 장' 같은 문구는 뜬구름 잡는 꼰대의 일성이다. 필자도 반성해야 하나?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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